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책을 유행(?)이 지나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작가인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에서 멘토 1순위의
작가이자 교수님, 선생님, 상담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 트렌드 소설이나 트렌드 자기계발류의 서적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학교 도서관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보이길래 그냥 읽어보기로 한다..
어찌보면 제목이 참 무책임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시적인 이미지들과 이들로 무장된 불합리한 것들을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반면에 또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 그저 '젊음'이라는 가치 하나에 내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시도하여 나만의 혹은 불특정 다수의 권익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경우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어느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 두가지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젊음'이라는 것으루 무장하여 할 행동에 대해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대의 눈이 아니면 어디에도 답이 없다'는 말과 함께 우리시대 젊음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넘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려 한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그리고 수많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한번쯤을 해 볼 것이다~
과연 내 인생의 시계는 지금쯤 몇시일까? 라고 말이다.

 


 

우리들 각자의 인생은 저 시침과 분침이 돌고 있는 저 시계의 어디쯤일까?


이 책에는 그런 청춘들의 수많은 우려를 담아서인지 내자신의 인생시계가 몇시인지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다.

하루 24시간을 대략 평균수명인 80정도로 나누게 된다면 1년당 18분이 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의 흔한 젊음이라 불리우는 20살이 인생시계의 오전 6시에 해당된다니...실로 놀랍지 않은가?
내나이는 이제 28...그래봤자 8시 30분 안팎의 시간일 게다...

일상생활에서 업무를 시작 혹은 준비하는 단계의 시간이 되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 이상한 인생시간공식은 우리의 인생테이블과도 맞는 듯 보인다. 당찬 꿈을 가지고 젊음이란 포부를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20살이 6시라니..그리고 사회에 진출하여 직장을 잡곡, 직장생활을 하는 등의 평균적인 나이를 고려해 보면 9시 전후로 하여 30살전후의 인생이 딱 맞아 떨어진다. 

 나는 비록 28이라는 늦은 청춘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동의하는 것들도 있었고, 하지만 동의되지 않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이 책의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학교의 교수라서 그런지, 학생상담내용의 상당부분이 서민(?)층과는 공감되지 않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사시준비에, 의사 변호사 준비를 하고, 외국유학등과 같은 상담거리들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과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의 포인트는 무엇보다도 그런 상담내용과 현실들 사이에서도 일련의 공통점들을 뽑아내어 이 책에 기재를 했다는 것이다. 

신경숙 소설의 외딴방을 보고 인상깊었던 구절이 하나 있다. 

'영등포 여고 주간에서도 일 년 있었기 때문에 세 그룹의 학생들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서로 다른 환경의 학생들의 꿈과 희망과, 절망의 양이나 질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 신경숙「외딴방」-


이렇게 김난도 교수는 우리시대에 살고 있는 각각 다른 환경에 처해있는 젊음들의 꿈과 희망과 절망의 양이나, 질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실천할 수 없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든 지금 실천하는 젊음이 되었으면 하고,
또, 동시에 우리 시대의 젊음이, 그리고 그대가 영원히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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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학교...이 책이 신간이라서 책이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구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게 되고, 책을 읽고 난 후에 후회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책이었다.

세상을 한번에 바꾸려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해도 청소년들이 스스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지구적으로 고민하면서,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내용이 담겨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이 되는 Peacejam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피스잼이란 세계 평화를 위한 청소년 대안 운동으로, 1996년 콜로라도 주에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피스잼에서 가장 긍정적인 가치는 청소년들 스스로 평화추구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은 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멘토가 되어서 청소년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실천적으로 나 스스로, 한가지 행동을 할 때 지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개혁과 혁명으로 바뀌기에는 힘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피스잼의 행동처럼 위로부터의 점진적인 변화가 아닌 밑으로부터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가치

를 지니고 활동하는 피스잼이
너무나도 놀랍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던중 주제 라모스오르타편에서의 빈곤을 위한 실천적 퇴치운동에서 공정거래를 하라라는 부분이 나온다.

나 역시도 얼마전부터 친구의 영향으로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저개발국가인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착취를 당하는 현지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수가 돌아가자는 취지의 운동인 ‘공정ㅇㅇ’같은 활동들도 평화를 위한 활동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피스잼은 2007년 노벨 평화상 협회에서 공식 인증한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 60만 명의 청소년이 참가해 세계 평화를 모색해 오고 있으며,

2009년에 한국에서도 ’글로벌 평화 리더’라는 이름으로 피스잼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피스잼에서의 실천행동 5단계 지침이 있다.

첫 번째는 문제를 고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실을 확인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행동계획서를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실천하는 것이다.

피스잼에서의 구호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처럼 이 5단계 행동에는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지구적이란 말이 아마도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가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변화하면 모든게 변한다는 말처럼 내 스스로가 변화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선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1.먹는 물과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자

2.인종차별과 증오를 끝내자

3.질병이 퍼지지 않도록 하자

4.극심한 빈곤을 없애자

5.사회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자

6.여성과 아이의 권리를 보호하고 교육하자  

7.지구 환경을 되살리자

8.군사 비용을 줄이자.

9.인류의 안전망을 만들자

10.폭력의 악순환을 끊자. 이 10가지를 생각과 실천의 모토로 삼고 피스잼의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을 거라고 생각되는 달라이라마에서 부터, 데즈먼드 투투, 주제 라모스오르타, 그리고 아웅산 수치 등등 11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들은 각자 위에 언급한 것 처럼 행동과 사고의 모토가 되는 10가지 사항들을 가지고 피스잼활동을 전개한다. 그 중 인상적인 몇몇 사람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은 달라이라마이다. 아마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달라이라마가 본명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말은 티베트에서의 종교정치의 최고 지배자 또는 교주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14대 교주로 1989년, 티베트의 독립운동과 사회적으로, 혹은 인권적으로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한 비폭력투쟁운동에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달라이라마는 우리 세상사는 아주 긴밀하게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으며 의존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적...즉 여러분의 이웃을 공격하는 것은 곧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 똑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이웃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말을 이야기한다.

달라이마라는 이 책에서 로덴이라는 청소년과 함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에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지침 몇 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우선은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것들중 한가지이다. 정부

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정부는 또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모습이 이상적인 민주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민영수도기업을 조사해서 기업의 비리 등을 밝히고 탄원서등을 제출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 같은 물아껴쓰기와 물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양치질을 할때나 세수를 할 때 등에도 물을 아껴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싱크대에 무심코 라면국물이나 음식물 찌꺼기같은 것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라면국물 한그릇분량을 다시 정화시키려면 1톤짜리 물탱크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정화가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하나에 피해를 입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두 번째는 오스카스 아리아스산체스와 주제라모스오르타이다.

아리아스 산체스는 코스타리카의 대통령이다. 첫번째 당선기간중의 업적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국민들의 염원으로 대통령에 재당선되게 된다.

이 둘의 대통령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 행보와는 너무나도 대조가 되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 인상이 강하게 남는 인물이다.

아리아스는 재임기간중 아리아스 플렌이라는 목표를 제시한다.

군대의 축소와 출판의 자유를 보장, 자유롭고 개방된 선거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플렌이다.

현재 우리나라나 북한은 대치되어 있는 상황임이 맞긴 하지만, 양국처럼 정당성이 결여된 무작정 군대키우기같은 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빈곤이나 환경파괴가 가장 큰 적이라면 힘을 모아 세계 경제 소비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여러가지 공로로 인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수상 뒤의 상금은 아리아스재단이라고 하

는 재단을 설립하여 평화운동을 지향하는 활동을 지속적
으로 전개하고 있다. 참고로 코스타리카는 1948년 군대가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전은 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과 직업, 건강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자력을 키우기 위해서 올바른 교육과 올바른 직업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위에 언급한 이 모든 것을 경제와 소비체제의 논리로 바라보는 이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현재의 대통령이 아리아스산체스와 라모스오르타처럼 내려놓음이란 덕목을 좀 배웠으면 하는 게 내 작은 바램이다. 그리고 주제 라모스오르타 역시 동티모르의 외무부장관을 지냈으며 대통령을 지내는 인물이다.

 그 역시 평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빈곤퇴치는 인간으로서 해야할 도덕적 의무이다”라는 말로 그의 사상을 대변한다.

그 역시 아리아스산체스처럼 경호원이 없이 노천 카페 및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며 종종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자동차를 직접운전하기도 하는 등 자유롭고 개방된 의식의 소유자이다. 라모스오르타는 우리모두가 함께할 때 자유로울 수 있고 함께 할 때 궁극적으로 안전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빈곤퇴치가 목적인 이 부분에서의 인상적인 행동지침 몇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로 소액대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둘째로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이고,

셋째로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 법안등을 요구하는 것이며 부정부패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효과적, 구체적으로 돕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행이 안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물론 어느 정치판이 안 그렇겠냐마는 대통령에서부터 부정부패되어 있으며 정부의 정책은 다같이 잘살자가 아닌 더욱 더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는 정책이라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슬플 뿐이다.

라모스오르타의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야할 도덕적 의무라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인상적인 몇몇 사람들을 언급하며 이 책의 서평을 작성했다. 물론 위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더욱더 훌륭한 가치와 행동을 지니고 있는 노벨수상자들은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스잼의 가치를 이어받고 적극활동하여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라고 자라나서,

10년 20년 30년 후쯤에 이런 가치를 두루 지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왔으면 하는 게 내 바
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 실천하나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것 역시 작은 내 소망이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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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또 하나의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 다니던 중에 로알드 달이라는 영국작가가 쓴 책들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책을 보면서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원작으로 더 유명한 로알드 달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이야기꾼이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는 내내 다음장을 어서 넘겨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긴장감을 늦출수가 없었다.

그가 사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화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책을 보고나서 머릿속에 무심코 생각나는 문장이 있었다. 바로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문장이었다.(난 한국에서 잠시 유명했던 이 책을 보지 않았다. 그냥 이 문장과 단어가 생각이 났을 뿐이다.)

 

책의 겉표지는 귀엽게 그려 넣은 고양이와 무심한 듯 하지만 선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의 신사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것 같은 할머니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골동품가구와 담배 포도주 등 각각의 주제를 이루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듯 귀엽게 그린 그림을 보고 이 책의 내용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반전을 즐기는 작가라서 그런지 한국산(?)책은 표지부터가 반전이다;;;;



또 하나의 재미가 담겨 있다.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상을 받았을 만큼 추리, 반전소설의 문장력 또한 인정 받을만 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1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의 각 마지막 부분을 읽을때면 이번엔 또 무슨 반전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와 더불어 빠른 이야기전개로 인해 마치 10편의 단막극을 보는듯한 느낌도 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정확한 결말을 지으면서 끝내지 않아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이렇듯 독자가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작가의 요소이지 않나 싶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중 몇가지는 어쩌면 자신의 살아온 삶 +약간의 픽션을 가미해서 내놓은 이야기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있었다.

로알드 달이 공군중령출신이었으며, 바람둥이였다는 기사를 보고 책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연관지어졌다.

책에 등장하는 바람둥이 공군대령의 모습에서, 바람둥이의 삶을 그린 ‘시나이 사막이야기’등이 그러했다.

그는 입심하나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패트리샤 닐‘을 ’이야기하는 제주’로 아내로 맞이했다는 소문이 돌았을만큼 그가 쓰는 문장체는 뭇 여성들을 매력에 빠져들게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극)단편소설을 읽어본지가 오래되어 처음에 읽으려고 시도를 했을 때 지레 겁을 먹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단편소설 치고는 상당히 흥미있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비록 옛 사랑과 옛 기억에 대해 추억하는것 같이, 낭만과 사색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비추하는 책이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그냥 그거 하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와 긴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킬링타임용”으로 아주 제격이다.

그리고 반전과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선 어른들에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가로 더 유명하지만 나머지 그의 소설들도 한번 읽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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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정우‘가 주연한 바람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제목인 바람은 바라다의 명사형인 바람을 연상시키기도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인 바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를 본 뒤 정우가 바랬던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바람같이 휙하고 불었던 학창시절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느끼는 거지만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배우다.

하지만 흥행에는 썩 재미를 보지는 못한 배우라 그런지 꽤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마지막에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알고보니 사진은 정우 자신의 어린시절의 가족사진이었고


영화의 모티브는 자신의 어린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알고보니 정우 자신의 자전적 성장영화였다.

정우가 술자리에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니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이 영화화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었다고 한다.

보는 내내 부산사투리가 실감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은 그가 실제로 부산 사람이이었기 때문인 거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국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정우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정우도 영화는 11편, 드라마는 3편?5편? 뭐 여튼 잘은 모르겠지만 단역으로 혹은 주연급으로 많이도 출연한 중고신인배우이다.

대중들에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으니 신인배우(?)라고 해 두자

영화를 보면서 나의 가족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학창시절 폭력서클과 학교폭력에 대해서 미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장하지도 않아 사실감이 느껴졌으며 영화를 보면서 내 학창시절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과 학교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영화보다도 사실적인 영화지만 중간중간 코믹함을 느낄수가 있다. 자습을 도망가서 담임선생님한테 맞는 장면은 특히나 사실감과 코믹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등장할때마다 “그라면 안돼.....“를 외쳐대는 서클의 형(배우 양기원)은 영화의 코믹함을 더해준다.

 

 
 
 
 

코믹함과 함께 짱구박사~를 외치시는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이라는 소재로 슬픔도 또한 연상시켜서인지 영화에서는 꽤나 중독성이 느껴진다.

 



이 영화 한번 봐 보시라고 추천을 해 봅니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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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이 많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하트로커....The Hurt Locker란 제목을 보고 영어를 해석한 한글말의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서양문화권과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라서 그런지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힘들었으나 영화를 보면서 느낌이 어느정도는 와 닿았습니다. 

                                                         먼저 이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 사실이 영화를 보게 만든 주요 이유중의 하나였습니다.

영화보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영화를 다 섭렵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사실 저는 남들이 거의 다 보고, 대작이라고 평가하는 반지의 제왕같은 경우도 본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관객점유율이나, 인기도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뜬금없지만 전 느낌이 끌리는 영화를 선택해서 보는 편인데요~그리고 더군다나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에서 사는 성인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왔을 만한 군대를 다녀왔고요, 또 군대를 부사관이란 직책으로 다녀와서 인지 전쟁과 군대를 다룬 영화나 글들에 관심을 갖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제게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이에 더해 82회 아카데미 6관왕까지~!! 아바타라는 대작을 제치고 이런 경이로운 기록을 차지한 경력 때문에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의 몰입도는 최강입니다.

많은 전쟁영화나 군대영화를 봤지만 여지껏 봐 왔던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The rush of battle is often a potent and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여기서 인상적인 문구는 이것인데요 War is a drug~!!

이 말이 영화전체의 주제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전쟁영화들은 전쟁상황에 필요한 물자들과 전쟁상황의 실모습을 영상화하는데 주력을 둔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전쟁과 군인이라는 단상에 대한 그들의 고뇌와 공포, 하지만 다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전쟁에 대한 중독성표현에 주력을 둔 것 같았습니다.~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라크 현지상황의 묘사와 함께 세밀한 카메라 이동과 포착이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모두가 극찬하는 폭파장면에서의 묘사라던가, 사막 한가운데서의 총격전 같은 경우는 이 영화가 왜 편집, 음향, 음향편집부문에서 상을 받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약 2시간 5분정도 되는 런닝타임동안 지루함이 없고 몰입도가 뛰어나서 영화를 관심있게 보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자중의 남자라면 정말 영화를 보면서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고요~여자분이시라면~기존의 전쟁영화와는 다른~스타일이란 점에서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안 보신 분들은 한번 봐 보세요~~정말 최고의 영화입니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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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제목이 자못 이 책은 어떤할까라는 생각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다소 늦은감이 없잖아 있지만 책을 구입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는 신경숙~!! 고3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그렇게 지금 우리시대의 '젊음' 들에겐 아주 짧은 기억에
숨어 있는 작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다...)

나 역시도 그 전까진 신경숙 작가의 글과 책들을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작년에 수능시험준비를 하면서 언어지문을 풀면서 짧게나마 많은 문학작품들을 접하게 되고, 그 중 수능이 끝나면 그녀가 쓴 글들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작가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선택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은 생각보다 다소 두꺼웠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글이 빠르게 읽히진 않는 느낌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글은 소설같지가 않고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나에게 남은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신경숙작가도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음"들에겐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청춘소설"젊음"에 대한 소설이 없었던 듯 하다.

난 여기 작가의 글에 나오는 것처럼 지드와 헤세의 청춘소설을 본 적도 그들의 글을 읽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들이 쓴 책들에 대한 청춘의 글이 궁금했던 것이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책을 읽고 난 뒤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사실이다..

젊은 날의 아픔에 대한 상처와 왠지 모를 공허함,,,그리고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단상까지도...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 표현해 낸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의 끝에 신경숙 작가는 이 책이 '비관보다는 낙관쪽에 한 쪽 손가락이 닿게 되기를,,'이라고 글을 남겨 이책이 공허함보단 무언가 꽉찬 것이 남아 있기를 바랬던 듯 하다...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책은 나같이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되었던 말이 되었던 작가의 의도를 살리고 그 의도를 알아 이해하는 것이 글과 말의 공통점이라면 말이다.

글을 읽고 난 뒤 나에겐 낙관의 정서보다는 안타까움과 공허함이 주위를 맴돌며, 책의 분위기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공기를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그리고 작가를 칭찬하지만 난 그렇게 소심하게나마 그녀를 비판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 내가 하는 이 책에 대한 비판은 이것이 전부이다.

글을 읽으면서 난 우리시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고, 우리시대 젊은 날들의 상처와
조금은 가슴시린 옛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꼈다...

어머니를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고, 젊음의 상처와 방황을 느끼면서 그때의 기억을 천천히 되돌려 보기도 했다.,,
내 젊은날의 사랑에 대한 추억에 눈물 아닌 눈물을 흘리며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을 읽기 전 "하루키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우는 하루키의 유명소설 '상실의 시대'와는 또 다른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을 읽고 난 뒤 이것은 '상실의 시대'와는 다른 성격의 것임을 느끼며,.비교할 대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상실의 시대를 보고 난 뒤 느끼는 공허함..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책을 다 읽은 뒤 나는 (신경숙작가는 이미 충분히 유명하지만) 그녀가 하루키처럼 대한민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작가가 되었으면 하고 느꼈다.

어찌되었던 난 신경숙작가가 대한민국의 의미있는 첫 번째 청춘소설을 쓴 것에 대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런 좋은 책을 발간해내어 양서를 읽게 해준 작가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글의 문체는 실로 사실적이고도 감성적인 것이 뭇 사람들을
'젊은 날의 추억과 기억'속으로 빠져들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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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을 크게 4부분으로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에서 가난에 빠진 세계를 돌보라는 큰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자선이 아니라 의무였던 시대가 있음을 도입하며, 기부란 못가진자의 권리차원이며, 가진자의 의무차원이라는 말을 한다. 여기 이 책에 나오는 글의 상당부분이 인상적이지만 그 중에 인상적인 몇 가지 문장들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 갖는 물건은 필

요에 의한 소유물이 아니라는 문장이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박애는 풍요로운 타인의 도움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말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나라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기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 중 유대교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삶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시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그런 인식과 환경이 다름을 크게 느꼈다. 저자는 자국 사람들이 기부를 거절할 때 내세우는 10가지 논리를 주장한

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들의 신념을 운운하고, 자신이 정당하게 번 돈이니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미국은 이미 대외원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무조건적인 기부같은, 박애적 평등은 현실의 정치개혁을 저해함을 주장하고, 돈이나 식량을 공짜로 주는 기부는 의존하는 습관을 들이기 때문에 자활도가 없음을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씨앗, 근본인 돈을

기부한다면 자신들의 미래의 성장의 가치를 버리는 꼴이기 때문에 기부를 거부하고, 가진 것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림을 주장하고, 자신의 가족과 지역사회 국가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들을 먼저 챙겨야 하기 때문에 기부를 보류한다고 주장하고, 마음이 움직이기엔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임을 주장하며 기부를 거부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이어서 2부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이 기부를 거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몇 가지 있음을 주장하고 기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기부를 거부하는 첫 번째로 실험을 통해 ‘인식가능 희생자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통상적인 구호의 법칙으로서, 통계적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닌, 우리 눈에 보이는 희생자를 구하는 것이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추상적인 정보가 아닌 구체적 인식 작용이 일어날 때 더 크게 움직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런 인식작용이 가능한 것은 감성체계, 숙고체계가 있기 때문인데 감성체계는 즉각적 행동을 유발하며, 숙고체계는 이성적 사고를 동반한다. 그런데 이런 숙고체계는 감성체계보다 처리시간이 길기 때문에 즉각적 행동에서는 표출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지와 서시를 동반한 숙고체계는 큰 기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 기부를 장려할 때 이런

방식으로 하면 효과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로 그들보다 우리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수백만년동안 진화를 거듭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고로 남을 도와야 한다는 직관은 단지 동포를 도울 때까지만 뻗치는 것이 보통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망원경인류애라고 하는 이 말은 전세계를 통틀어
지구촌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현대시대에 맞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헛수고는 하지 않는 다는 의식에, 난민을 구할 수 있는 수보다 비율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 때문에 기부를 거부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천명중 20%보다 백명중 80%를 구하는 일에 나서고자 한다며, 수치상 따지자면 200명

과 80명이지만 전자보다는 비율이 꽉 찬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논리에 대해서 비판한다. 기부는 무익성이라는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바다에 돌 던지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행태가 기부를 거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내 경험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난 초,중,고 시절 가난이란 것에

대해서 찌들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당시 친한 친구중에 잘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중학교때 아버지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말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내 친구의 아버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면서 물질적인 도움을 거절했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물론 여기서 지금 내가 언급하는 형태는 이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전

형적인 안 좋은 기부의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말이다. 네 번째로 책임이 불분명하다면 사람들은 나서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키티 제노비즈라는 말이 도시인이 그 이웃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나타내는 용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주변에 38명이라는 이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무관심으로 인해 폭행당하여 죽은 사례가 있음을 이야기한

다. 그러면서 그것을 방관자효과라고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로 왜 나만 도와야 하는가? 라는 공정성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기부에 방해가 됨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공정한 제안을 함으로써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기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음으로써 이를 거절함으로써, 부당한 대접은 감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런 직관은

사회적으로 유용함을 이야기한다. 서로 믿고 협력관계를 믿는, 공정한 관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여섯 번째로 결국 문제를 돈으로 귀결됨을 이야기한다. 칼 마르크스는 분리의 보편적인 기제가 돈임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돈으로 사람들의 성격, 힘을, 다른 무언가로 바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돈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돈에 대해서 인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돈은 개인주의를 복돋우는 한편 공동체의 인식을 희박하게 만드는 그런 사태가 오늘날 사람들의 주류인식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바람직한 기부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한다. 기부문화는 기부하는 사람의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라는 성서와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그

런 행동을 통해 결국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를 권장하게 되고, 이는 더 큰 기부를 창출한다고 이야기한다. 기부의 의도가 ‘순수함’보단 기부의 용도가 ‘순수함’만을 중요하게 여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돕게 될 대상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 기부를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을 이야기한다. 또
디폴트를 이용해 보다 많은 기부를 이끌어내야 함을 주장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장기기증을 예로 들면서 선택의 자유는 보장하고, 단지 디폴트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이 좋은 방법임을 이야기한다. 단지 디폴트의 범위규정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신중히 해야함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기부도 자기만족이기 때문에

자기 이익의 원칙을 널리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한다. 투표, 헌혈, 팁을 주는 행위와 같은 모든 행동들이 자기이익원칙의 이데올로기적 신념임에 기부를 할 때 이런 것 들을 이용하여 기부를 시작하면 좋은 효과가 나타남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3부에서는 남을 돕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기부를 하기 전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단체에 기부를 할 것인가? 한 사람을 구하는데 얼마나 비용이 들 것인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자선단체 같은 경우는 기부금액의 77%를 재단의 운영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대부분의 자선단체가 기부금의 효율성, 투명성 부문에서의 엄격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비판한다. 그리고 한 사람을 구하는데 얼마나 들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들이 흔히 보는 광고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굶주리는 아이들20

명치 한끼 식사를 1000원이면 제공할 수 있다와 같은 광고들 , 하지만 이런 광고들은 실제로 이런 수치로 그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광고를 하는 것에 비판을 가한다. 실제 조사에 들어가 보니 대다수 단체들이 제시한 수치에서 2배정도에서 많게는 4배 이상의 수치가 차이가 남을 이야기하였다. 물론 그 중에서 효과적인

자선단체들도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라민은행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면서, 그같은 소액금융대출이 빈곤의 퇴치에도 아주 크게 기여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임을 이야기한다. 또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롤 모델로 하려는 이상적인 형태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무보증에 일반금융권 같으면 대출자격이 없는 사람

들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대출회수율이 97~98%에 달하는 경이적인 수치를 보여주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이상적인 형태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여러 구호 단체들의 성공사례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프리카같은 나라에서 한 마을에 1만달러를 기부하여 우물을 만드는 사업을 예로 든다. 이것은 주민들 한명 한명에게 돌아가는 금액으로 친다

면 고작 10달러정도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물을 지음으로써 물을 구하러 가는 시간을 단축하고 소비하지 않으며 그 시간에 공부라던지 다른 생산적인 일에 유용하게 씀으로써 큰 효과를 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굳이 따져서, 계산하여 수치를 낸다고 하여도, 이들 각자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가진 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객관적으로 금액이 많던 적던간에 이 돈을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세계에서 부유국들의 원조액은 실로 상당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100달러 대비 0.3%,즉 30센트밖에 안 되는 수치임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원조들이 세계적 빈곤문제 해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 해결에도 쓰인다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OECD 원조액 전체의 1/4정도만이 세계 최빈국에게 가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원조를 할 때 그들의 목적에 맞추어 한다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로한다. 무조건적인 원조가 악영향을 끼쳤던 사례들이 있음에 무조건적인 원조가 나쁠 수도, 또는 무조건적인 원조로 인해 자신들의 경제적 자립도

를 높인 사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이에 나쁜 제도가 좋은 사업을 몰아낸다면서 , 정부가 부패하고, 이 무능한 정부를 교체하면 기회가 생긴다며 무능한 정부가 있을시 역효과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기도 한다.

현재 지구는 만원이라며 인구 수용능력이 오버했음을 강조해 최빈국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론들이 있다. 이 이론들은 생산되는 식량속도가 인구증가 속도에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 식

량들이 온전히 식자재로 소비되지 않고 다른 분야에 소비되고 있음을 간과하는 주장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로 인해 세계의 식자재들의 가격은 상승하고, 식량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기부의 새로운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음을 이야기하며 부모가 자신의 아이와 도덕적 의무사이에서 갈등할 때 반드시 자신의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당위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격미달의 부모도 아니며, 단지 그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선택을 할 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남다른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것과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일 사이에는 절실하고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제 몫을 내놓지 않는다 하는 것은, 사실 분명한데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내 생활을 망칠정도로 더 많은 몫을 부담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을 위해서 공동적으로 행동하자는 운동을 주장한다고 한다. 새천년개발운동이란 것으로서, 빈곤비율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고, 초등교육과 성교육의 차별을 없애고,
5세 이하 아동사망률과 산모사망률을 낮추고, 에이즈의 확산을 막으며, 음용수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활동 실현에 있어 기부액책정을 슬라이딩스케일제도라는 것의 적용을 통한 차등기부문화가 발전,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각자가 질 수 있는 의무의 적정선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런 이론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빌게이츠와 같이 288억달러라는 유례없는 기부액을 기부한 사람들이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백만장자들처럼 기부액이 상당히 낮은 수치에 머물면서 자신을 위해 초호화 요트, 항공모함 등을 소유하고 스포츠팀 운영 등

을 하는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그런 행태가 우리시대의 문화를 대변한다며 씁쓸한 비판을 가한다. 아직 기부의 공식적인 기준은 없다. 하지만 많은 단체들에서 기부의 공식적인 기준을 세우려 노력하고 있으며 현실을 반영한 이

상적인 기부형태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것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진세를 통한 차등적용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느냐. 우리가 사는 사회의 제도적 구조와 사회적 관습이 가장 큰 관건이니 우리가 먼저 구조와 관점, 관습을 바꾸어서 행동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기부의 가장 큰 동기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얻는 행복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에피쿠로스라면 우리는 흔히 쾌락주의, 그래서 에피큐리안이란 말이 맛있는 음식, 술을 즐기는 사람을 지칭한다. 하지만 고대의 의미를
의식있게, 고귀하게, 정의롭게 살지 않는 한 기본삶은 누릴 수 없다며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철학자도 있다고 한다. 그런 고대의 지혜는 지금도 의미가 있으며, 기부를 하는 사람의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기부와 행복 사이의 연계는 뚜렷하다며 행복하다는 감정은 실험을 통한 작용임이 밝혀졌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윤리적 문제를 다룬 책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기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책을 다룰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의 처음부분을 읽어 보면 저자는 이 책을 기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려고 지은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마도 양심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보고 조금의 죄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평소에 기부라는 것에 마음속에 관심이 조금은 있다. 하지만 막상 실천이라는 것이 잘 안 된다. 예전에 광고중에 그런 광고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정확히 맞는 줄은 잘은 모르겠지만 그 광고는 기부문화를 조성하자는 공익광고는 아니고 기업을 홍보하는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

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고의 전반부에 사람들 모두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공통된 의견을 낸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그런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꼬집어낸 풍자성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 광고가 생각이 났

다.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를 통해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운운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돈 쓸 권리를 주장하며 기부를 거부하는 우리 인간들의 행태가 참으로 위선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사회적 자본의 여건이 없다

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공부, 노동)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극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충분히 사회적 자본의 혜택을 누리고 부족함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에선 그 격차는
더욱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입신양명과 같은 말은 이제 옛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현대사회의 자본과 정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극빈층은 더욱더 극빈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라는 것이 급변하는 이 세계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 세계의 부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나, 경영자들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축복이 되어야 할 자원을 착취해 감으로써 이것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부패, 쿠데타, 내전을 일으키는 저주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글귀를 보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들이 내전과 다이아몬드라는 조금은 맞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해서 연관지어 볼 수 있는..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잔혹한 현실에 대해서 조금은 윤리

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부분과 연관지어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논리가 떠올랐다.

이 책의 후반부를 보게 되면 기부의 가장 큰 동기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얻는 행복감이라고 나와 있다. 나 역시도 기부를 많이는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 하기는 한다. 그리고 나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헌혈이라는 기부로 내 의무를 다한다는 자기만족적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도 그래서인지 나는 돈을 기부하는 횟수가 헌혈을 하는

횟수보다 적다. 그런 것이 저자가 말한 자기행복감이라는 표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의 한 문장인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일이리라 생각하고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세상에 아마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문득 기부란 정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16대 대통령인 故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도 포함이 되겠지만, 그의 전반적인 신념과 사상 때문이지 않나 싶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라는 분야에 대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

자가 주장하는 기부의 본질적인 의미와, 누군가가 생각하는, 그리고 또 내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가 서로 맞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며 이 글을 마친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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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      나에게 흥미를 끈 것은 영화의 제목이라기보다는 소재였다.
군 부사관 출신인 나로선 해병대라는 소재보단 부사관이란 소재가 맘에 들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사관이란 소재와 함께 여군이라는 소재는 나에게 흥미를 끌었다. 1년에 2기수밖에 되지 않는, 흔치 않는 여군동기들과 같이 임관을 한 나로선 당연히 흥미가 가는 소재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리뷰와 평점을 보니 0점에서부터 10점까지 점수대는 다양했으며 혹평에서부터 악평까지 정말 다양한 반응이었다.

전역한지 1년 8개월정도의 시간이 흘렀다..지금은 군 내무생활의 분위기 및 간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는 못 하지만 영화를 보며 옛 생각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아이의 여군부사관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여군부사관들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그들의 투지와 말투 행동등을 비슷하게 연기한 것 같아 그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엉성한 스토리구성과 어설픈 하극상코미디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임원희가 하사 계급장을 달고 부
대를 전역하는 모습에서 다 해소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군과의 조우중에 부상을 당한 임원희가 전역을 하게

되고 전역을 하면서 다리를 절며 부대 위병소를 걸어나오고 반대편에선 같은 중대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 행렬에게 임원희는 거수경례를 하고 이아이가 제대 지휘자로서 지나치는 듯 하지만 "선두~ 제자리에~서~!"라고

 명령하며 "뒤로~돌아~!"라고 또 다시 명령 그리고 "선배님께 대하여 경례~!!!"라는 명령에 눈물이  났다. 군 시절 거수경례를 칼같이 그리고 거수경례는 진정한 상급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군 시절 원래 소대 이상의 제대에서. 물론 중대이상의 제대에서 단체거수경례를 받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제대에서 단체거수경례를 받는 일은  정말이지 영광적인 이다. 굉장한 공로가 있거나, 상당한 계급이 있거나, 혹은 진정한 상급자로서의 예우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등이 동반되어야만 단체거수경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단체거수경례를 임원희는 위병소를 걸어나오는 길 위에서 받은 것이다.

정말로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것은 인위적인 예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원들의 손끝은 가지런했고 자세는 올바랐으며, 눈빛은 빛났다.

군 부사관 출신으로서 한편으론 임원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명예스런 거수경례를 받고 또 할 수 있다니.....

 영화를 보는 동안 사격장면, 뛸걸음장면, 교육훈련장면 등을 보면서 군시절 내가 지휘하고 가르치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1%를 혹평했지만 난 이 영화를 호평해주는 사람중의 한명인 1%가 되고  싶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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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심야영화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심야이고,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예상보다는 많았다.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는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

온화한 모습의 판틴과 어딘지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한 그의 딸 코제트

<출처: 다음 영화>

 

내가 예전에 봤던 뮤지컬 영화중 인상 깊었던 영화는 맘마미아와 헤어 스프레이였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그 두개의 영화보다 노래가 훨씬 많았다. 

아니 영화의 전체가 노래로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맘마미아는 워낙에 많이 알려졌던 외국 음악 그룹인 아바(Abba)의 노래가 나오기에 흥미있게 봤고

헤어스프레이는 처음으로 보게 된 뮤지컬 영화라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등장하는 노래는 다 몰랐지만 영화가 굉장히 유쾌하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즐거운 느낌이 더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영화 레 미제라블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래서 그런 한 편의 훌륭한 뮤지컬을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반응이다.

 

나는 후자였다. 살면서 뮤지컬을 본 적은 없었다.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몇 차례 본적은 있지만

뮤지컬이 그런 느낌이라면 뮤지컬도 꽤나 할 만한 문화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노래로 진행되는 영화형식이 다소 낯설기는 했지만 2시간 30여분이 훌쩍 지나갈 만큼 

몰입도가 높은 뮤지컬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 무작정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 제목을 보면서 아무리 프랑스어이지만 

miserable 이라는 영어단어가 생각이 났다.

 

그냥 빵 훔치고 감옥에 수감되었던 장발장 이야기일텐데 왜? 제목이 레 미제라블일까?하는 궁증증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오류가 있었다. 장발장은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요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미 레 미제라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이고, 극이었는데 이게 영화화 되기 전에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고보니 miserable이라는 뜻은 영어단어의 의미와 똑같이 비참한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냥 생각해보건데

Les는 영어 표현의 The 정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The miserable: 비참한, 절망적인 사람들 의 프랑스식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보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나 역시도 이 제목처럼 비참함에 넋을 놓을 지경이다.

 

바리케이드 너머, 위에서 tomorrow를 부르는 성난 군중들의 모습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역사, 시대적 배경을 장면으로 표현해 낼때 그 비참함, 절망스런 일반 대중들의 삶을 얼핏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빵 하나 훔쳐놓고 19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 비참하다는 건지,

자신의 신념과 맞서다 자살을 택한 자베르가 비참하다는 건지,

계급의 한계를 넘지못하고 혁명에서 싸늘하게 시체로 변해버리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에포닌이 비참하다는 건지,

생계를 유지할 돈 몇 푼이 없어 돈 몇 푼을 위해서 공장노동자, 매춘까지 그리고 죽게되는 판틴이 비참하다는 건지, 

아무런 대안도 준비하지 못한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을 기다리며,시민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이 비참하다는 건지, 시민혁명을 꿈꾸고 처음엔 동조하는 듯 하지만 국가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소시민들의 삶이 비참하다는 건지,

시민혁명에 처음에는 동조하지만 계층이나 계급으로 나뉜 삶과 서로 다른 세대들의 뜻을 모을 수 있게 통합하지도 못하는, 통합받지도 못하는 그 시대적인 한계가 비참하다는 것인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나중에 혁명이 성공해서도 비참한 삶을 살게되는 민초들의 삶이 비참하다는 건지,

 

영화의 제목의 함의가 참 다중적이다.  어디가 정확하게 비참한 부분이다라고 꼽아 이야기하기는 힘들 듯 하다. 

그들 모두의 삶이 비참함 대변될 수 있고, 그들 모두에게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가구 바리케이드 위에서 tomorrow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민혁명의 성공적인 모습을 담아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만 표현해 낸 현실에서는 민초들의 시민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장면이 성공적으로 끝나 감동적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더 비참하고 절망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영화의 최종적인 의미는 그것이 아닐까 싶다. Les Miserables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혹자는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빗대어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대선패배의 아픔을 힐링받을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픔을 굳이 영화와 연결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연결짓는 것이 나는 더 안타까운 안쓰러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영화 안에서 성공적으로 끝맺은 혁명이었다면 그런 힐링의 위로는 '힐링'이라는 단어표현이 성공적이라 말 할 수 있지만

 

나도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영화의 이면에서 현실부정을 찾지 말며, 굳이 영화안에서 힐링을 받으려 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런 관점은 예술의 한 장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도록 표현해 낸 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려는 듯 하다.

 

영화를 보기 전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앤 해써웨이의 연기가 일품이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기대를 하고 보게 되었다. 또 그녀의 이름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줄 알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게 되니 그녀는

 

 

이런 게 진정 배우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한 앤 해서웨이의 연기력


영화의 초반부와 영화의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는 정말 최고라고 칭찬해줄 만 했다. 

 

난 그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로 그저 대박을 친 인기배우 정도로 생각했다. 그녀가 나오는 영화 몇 편을 보았지만 그 영화들 안에서 그녀의 연기는 나에게 감흥을 줄만큼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그녀가 불렀던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은, 무척이나 충격이고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개인적으로 I dreamed a dream은 주변 사람들이 하이라이트라도 꼭 봐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에 대해서 칭찬을 하자면앤 해서웨이뿐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가 다 뮤지컬 배우같았다. 

아만다 프리사이드나 앤 헤서웨이,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의 노래에 관객들은 아마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도 실제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 역할이었다.)

앤 해서웨이가 I dreamed a dream을 불렀을 때 나 역시도 그 장면에 몰입해 내가 그런 꿈을 마치 꾸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찾아본 것인데 앤 해서웨이같은 경우는 노래를 너무 잘해서 알고보니, 원래 그녀가 어릴 적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 역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판틴역할을 했었다고 하니 그녀의 노래가 왜 감동으로 다가 오는지, 왜 뭇 감성을 자극하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이렇다라고 홍보하는 영화의 각 장면에서 주,조연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인상깊다.

 

원래 스토리라는 것이 사건과 인물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이 영화를 볼때도 마찬가지 몇몇 인물간의 관계에 주목을 하고

그들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의미들을 천천히 따져본다면 흥미가 있을 것 같다.

 

 어린 코제트와 장발장

 

장발장(휴 잭맨)과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의 관계, 피도 나누지 않았지만 언제나 코제트에게 헌신했던 장발장의 모습, 자신과 신(God)에게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올바르게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죄수와 간부에서 죄수와 경찰 간부로 다시 만나게 된 장발장과 자베르

 

그리고 레 미제라블의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만드는 장발장과 자제르의 관계,

죄수와 경찰 간부로 시작해서, 시장과 경찰간부, 그리고 종국에는 다시 도망자와 경찰간부으로 끝나지만 결국에는 자살을 택한 자베르, 그들의 미묘한 극적 흐름이 영화의 몰입도를 더해준다. 장발장(휴 잭맨)과 자베르(러셀 크로우)의 서로간의 신념과 의지의 대립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와 종반부에서 장발장과 판틴(앤 해서웨이)의 관계, 공장장(시장)과 여자 공장직원으로서의 첫만남에서, 종반부 한 교회안에서 죽어가는 장발장과 이미 천사가 되어버린 판틴, 그리고 곧 죽음을 맞아 서로 천사가 되어 서로를 맞이하는 그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세가지의 인물 관계도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또 이외에도 여러 인물간의 관계가 등장하지만

추가로 사랑을 주 테마로 보는 이들에게는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우연한듯 필연적인 사랑,

그리고 이루지 못한 에포닌과 마리우스의 사랑에서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언젠가 인터넷 기사로 레 미제라블에 대한 리뷰를 본 적이 있다. 영화값 8천원이 너무 싸다는 제목의 리뷰성 기사였다. 처음에는 이 기사를 보고, 레미제라블이 뭐길래 ?? 뭔데?? 이렇게  극찬을 하나 싶었다.

헌데 이 영화..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리뷰를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이 영화 꽤나 추천할 만한 영화다. 오늘 극장으로 달려가 혼자 영화에 심취해 심야영화를 한번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의 몰입도를 위해 혼자 보는 것도 괜찮다 싶다. (영화는 원래 혼자봐야 몰입도가 있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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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다크나이트 라이즈,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심야할인이 되어 5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CGV영화관


나 역시도 개봉당일 심야로 영화를 보고 왔다. 

심야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객석의 절반은 족히 찬 것 같았다. 


뚜껑을 열고 보니 대작은 대작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런닝타임 164분이 결코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언제나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전작들이 그러했다. 이번 작품 역시도 그러한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주연배우인 크리스챤 베일의 연기는 언제봐도 명품이다. 


캣우먼으로 나온 앤 헤서웨이의 연기도 괜찮았다. 


전작에서 히스레저의 조커역할이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이번작품에서 나오는 베인의 임팩트는 조커에 밀리는 느낌이다. 캐릭터상으로는 강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조커에 비해서는 

부족한 느낌이다.

 

베인과 배트맨

경찰로 나오는 조셉고든 래빗의 연기도 매력이 있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든 특성을 잘 살려서 표현해 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면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마지막을 표현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느낌이 살짝 든다. 


외국 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는 글을 트위터를 통해서 봤지만,  

임팩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인 인셉션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고담시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는 한 장면.,


하지만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러닝타임 160여분은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지루한 느낌도 없다. 

개봉첫날 약 44만명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영화인 연가시가 흥행에 밀릴 것 같다는 것이다.  


현재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개봉한지 1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고,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에서 영화평점이 꽤나 높다. 관객평점 9.1대를 찍고, 전문가 평점 8.6대를 찍고 있다. 


그만큼 전문가들도 높게 평가하는 작품이고 관객들도 높게 평가하는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볼 것을 추천한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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