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의 대제는『두 개의 물음을 통한 한국사회 교육 비판』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프랑스 이주 노동자였다. 내가 알고 있기로도 1979년경 프랑스로 망명하여 남민전사건 관련하여 한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끝나는 시점인 1999년경부터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많이 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공안정부당시 무차별적이고 당위성이 없는 억압에 의하여 프랑스 이주노동자가 된 것이다. 처음 홍세화선생님 특강을 한다고 하였을 때 나름 마음에 설레기도 하였다. 군생활 시절 우연한 계기로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을 접해보고, 이들을 자주 찾는 나에게 홍세화 선생님의 특강은 정말 보석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님
은 강연간에, 자신은 가난한 프랑스 이주노동자라고 표현했으며 그렇게 됨으로서, 프랑스공화국의 혜택을 받았고, 또 그런 혜택을 한국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고, 돌려주기 위한 마음에 한국에 와서 책을 펴고 칼럼니스트 활동을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강의의 대제목은 “두 개의 질문“이었다. 두 개의 질문이란 각각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와 “한국처럼 공부를 많이하는 나라는 세계에 유례적으로 없는 나라인데, 과연 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에 대해 전혀 영향을 끼치
지 못하는가?” 이다. 두 개의 질문 모두 한국사회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2~30대라면 공감이 가는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하여 홍세화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Publica라는 “공적인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사용하여 공화국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질문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에서부터 “대한민국의 공교육 1차소명은 무엇인가?”로 그리고 “우리나라는 과연 해당국가(민주공화국)인가?”라는 질문으로 발전시켜서 강의를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 체계는 1894년 관립소학교 1900년경 관립중학교를 시발점으로 하여 실제로 정착된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이라며 비판하였다. 우리나라의 근대식학교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틀을 못 벗어난다며,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학교가 아님을 강력히 이야기하며 현재의 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단순히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학교도 비교의 대상이 된다며 프랑스에는 운동장이 없고, 교단이란 것이 없으며, 교단위에 올라가 있는 권위적인 사람도 없으며, 운동장에 사람 역시 없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그런 학교를 보면서 자신이 다닌 학교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그런 학교
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헌데 그런 학교가 바로 군사학교였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민주공화국의 학교 형태로 우리나라의 학교들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학교구조를 굳이 꼽아 이야기한다면 운동장은 연병장이며, 양호실은 위생실이며, 교단은 사열대와 같은 것이라며 제국주
의 시절의 잔존물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것 중의 하나로 프랑스는 학교의 교문에 자유, 평등, 박애라는 3개의 단어를 제시해 놓는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기 역시 이 3가지를 상징하는 색깔인 청, 백, 홍을 사용하여 공화국임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홍세화 선생님이 경험한 대한민국 학교의 진정한 공교육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홍세화 선생님 본인은 온통 반공, 반첩교육만 받았을 뿐, 그리고 이런 지배적인 정서는 여전히 2010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학교에 만연하고 있다고 이
야기한다. 단지 강압적인 질서만을 강조하며 오직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재차 학교란 것은 민주적 공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래야지만 민주적 시민의식을 학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질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과연 내가 다닌 학교가 2010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민주적 시민의식 형성의 장소와 시간을 제공하였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진정한 공교육은 군주의 사적소유물이 아닌
공적인 것임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그런 공적부분이 사적인 것을 창조하기 위한 창출장소로 변한 것에 대해 개탄하였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같은 진정한 공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대한민국에서의 반응은 2가지일
것이라며 이야기한다. 하나는 선진국가의 시스템이다 라는 반응과 다른 하나는 빨갱이짓이라는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반응일 것이라며 아직도 우리나라국민의 지배적인 정서를 고쳐야 할 것을 이야기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공공
적인 논리로 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나중에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환원 의식이 상당함을 이야기하였다. 참으로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부분이지 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또 현재 우리나라에선 학위=교육자본=상징자본=(자본)획득이라는 구조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의식과 현재의 사회현실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였다. 나 역시도 현재의 기득권들은 사회의 환원의식이 부재되어 있으며, 오
직 특권의식과 보상의식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가치를 실현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로 인하여 공공성이 실종되고 오직 사유재산권이 하늘을 찌르며, 민중의 생존권이 위
협받는 현 상황이 문제가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임을 느낀다. 홍세화 선생님은 첫 번째 질문의 마지막 답변의 마무리 즈음에 Republic이란 어원의 개념을 통해 진정한 공공성을 공유하자며 이야기하였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과 사회인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충격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다. 우리나라가 공부시간과
사회인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수치가 상당히 낮음은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제도권 교육을 통한 초등
학교 1년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공부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제도권을 잠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대학의 문턱을 막상 밟게 되어도 다시 한 번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홍세화 선생님의 대답인 현 기득권의 사회환원 의식의 부재와 특권의식과 보상의식으로 가득찬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정책들과 현 사회풍토로 인하여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위에서 , 아
래에서 압박받는 20대들의 현실이 서글퍼짐을 느꼈다. 나 또한 20대로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노라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환원의식을 더욱 더 신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의 고등학교 1,2,3년때부터 사형제와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대해 토론을 하고 노동조합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토론, 국가와 공권력을 동반한 폭력 이라는 주제 등에 대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사회비판 의식과 환원의식을 키워주는 교육풍토를
칭찬하였다. 그러면서 강의 중간에 18-16-12-10-8이라는 숫자를 칠판에 써가면서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재미있는 질문을 하였다. 나 역시 제도권 교육에 익숙해있어서인지 단순히 드는 생각은 수학에서의 순열뿐이었다. 하지만 홍세화 선생님은 18은 프랑스에서 1830년대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노동시간임을 이야기하면서 작아지는
숫자는 현대까지 오면서 줄어들고 있는 공적인 노동시간을 의미한다며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이런 것을 공유하지 못하니 사회비판의식이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공감하였다. 그러면서 생각의 고집을 위해 자신을 합
리화하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비판하였다. 생각의 수정이 아닌 생각의 합리화로 지금의 기득권들은 이를 고정시켰다고 우리들은 생각하며 그런 우리들조차도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 편협한 사고방식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우리들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인간과 사회에 관한 학문인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 수학같은 것을 의미하는 정밀과학을 배운다. 하지만 정밀과학과 같은 정답이 있는 학문은 말 그래도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사회비판의식을 동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처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사회비판의식을 동반한 내 자신의 사고의 과정을 거쳐 정해지지 않은 정답을 도출해 내는 학문이다. 그런 학문에 대한 학생의 평가를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한 수치로
50점 만점에 43점, 100점 만점에 69점이라는 식으로 규정짓는 현실에 다른 선진국가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수치를 외운 것 뿐이라며 우리나
라 교육현실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런 현실로 인해 독서와 글쓰기가 사라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들에겐 비판의식과 감수성,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함을 이야기하였다. 우리들에게 풍부함과 정교함에 대한 생각의 표현이 필요하기 위해선 독서가 필요함을 재차 강조하였다.
강의간 홍세화 선생님의 가장 인상적인 말은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정교)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성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까지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도 독서광까지는 아니어도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막상 이 말을 들으니 내 책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폭넓은 독서가 아닌 폭좁은 독서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며 내 자신에 대한 작은 수치심을 느
꼈다. 내 자신에 대한 비판의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다. 책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단지 서가에 꽂혀 있을 뿐이라는... 그러니 책을 우리가 가서 찾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가 아닌 변화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선생
님의 말씀에 정말로 크게 공감했다. 어느 나라건 공교육자체에 독서가 안 들어가 있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독서를 하려고 하면 공부를 안 한다고 뭐하냐는 식의 질문을 받고는 한다며, 강의간 나는 단지 “왜?”라
는 질문만이 난사하는 한국의 토론문화와 단지 합리성을 추구하지 않는 죽은 사회의 현실에 대하여 재차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에 학교는 단지 지식전달의 장소가 아닌 배움터이며, 일터이라고 우리들의 터를 어떻게 만들것인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우리들은 20살이 되면 대학을 들어가며 모든 것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20대들은 단지 향락문화에 빠져 정치와 경제 복지 등등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젊은층들중에 진보적인 의식
과 사회비판 의식, 사회환원 의식을 견지한 사람들이 극소수이다. 그러나 그런 젊은층들은 필시 독서와 토론을 생활화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홍세화 선생님은 이야기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무언가 질문을 던지게 된 사람들이며, 주체적 인식의 발로라며 독서와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였다.
수구는 어제가 좋았던 사회, 보수는 오늘이 좋은 사회, 진보는 내일이 좋아야 하는 사회라며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암암리에 만연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그런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여건의 전망은 지금 교대를 다니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라면서 두 개의 물음보다 더 큰 마지막 물음을 던지면서 강의를 마쳤고 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네크라소프-
'하고 싶은 말 & 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동.. (0) | 2015.10.17 |
---|---|
그저..무상함..조촐한 위안 (0) | 2015.10.07 |
참회일(懺悔日) (0) | 2015.07.15 |
비상(飛上) (0) | 2015.05.12 |
가을밤 (0) | 2013.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