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세팅.... 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에 베어있는 것들이다.

쉽게 표현하여 언론의 말장난 정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어느 정부가 안 그렇겠냐마는 역대 정부들도 그러했고 지금 정부 마찬가지 아젠다세팅의 의도가 느껴지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대학교 영어수업도중 Foreign Teacher 와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하던중

아젠다에 관해 배우는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 아젠다세팅이 심하다는 얘기를 건넸더니
미국에서 온 원어민Teacher가 하는 이야기가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원리를 주원칙으로 하는 미국에서도 정부의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은 당연하다는 이야기이다.

위의 말처럼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생각 자체에서 배제가 되는 원리를 통해 
우리들은 수없는 불이익을 겪었다. 지난 우리세기의 불친절한 역사가 그래왔고 현재도 그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아젠다세팅.....
그것은 어쩌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자행되는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횡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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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임시직

여러가지들 2016. 2. 23. 11:10
항상 비교를 하다보니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의 복지와 사회구조를 비교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북유럽과 같은 복지와 사회구조를 실현하려면 

대한민국의 구조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제일 첫번째로 다가오는 한계가 재정적인 부담일 것이다.

월급여의 7~80%를 세금으로 내는 유럽들과 다르게 세금의 부담이 적은 대한민국에서 무조건적으로
유럽형복지와 처우를 바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 본다.

그래도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이 벼슬이다. 말 그대로 벼슬이다. 하지만 스웨덴같은 경우는 
벼슬이 아니다. 말 그대로 봉사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의식도 변화하고 대한민국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그 언제쯤 이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소원을 빌어본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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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기사에서 스위스의 한 은행(UBS AG)이 직원들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은행에 출근하기 위한 Dress Code를 제시하고 규제해서 이슈가 되었다. 그 원래 그 분량이 44쪽에 달하는 분량이었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은행은 그런 대량의 규제들을 벗어나려고 Dress Code를 간소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니 무슨 군대의 병영생활에 나와있는 육군 교범을 보는 듯하다.


육군교범에서 제시하는 내용들
 

군인들의 머리를 어떤식으로 잘라야 하는지

옷(군복 및 체육복 등)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런 것을 관물이라고 한다.)

군장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 

경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위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투화(군화)을 어떻게 매야 하는지(이건 민간인들이 생각하기에 조금 이상할 수도 있겠다.)
등등~~~~~


은행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내용들


No garlic or onions, please -  제발~마늘과 양파는 먹지 말길

Underwear, which should be skin-colored - 속옷은 살색으로

How to apply makeup and what kind of perfume to wear - 어떻게 화장 하고 어떤 향수종류를 선택할지

Keeping your toenails trimmed and filed - 
발톱을 단정하게 다듬고 정리할 것

Always wear wristwatches to signal ``trustworthiness and a serious concern for punctuality

-철저한 시간엄수에 대한 관심과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언제나 시계를 착용할 것 


-영어 원문 출처 : 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ecial/2011/01/182_79884.html

 


군인(부사관)으로서 4년을 넘게 복무를 했지만 그런 규제는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보기가 드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의 정확한 사항들을 볼 수는 업지만 일부 내용을 보다보니 심한규제가 몇 가지가 있다.

마늘과 양파는 먹지 말라는 것 발톱을 단정하게 다듬고 정리할 것, 시계를 언제나 착용할 것 등과 같은 것이다.

향수를 어느것을 쓰든, 발톱을 깍든 말든, 그런것은 쉽게 말해 내 맘이지~!하는 생각이다.

이는  개인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한 것이다.

이 은행에 들어가서 근무를 하려고 했다면 개인기호 사항들까지도 포기하는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가?
차라리 이렇게 규제할 바에는 은행원들에게 군복과 같은 Uniform을 지급하여 

비록 스위스 내에서 최고의 은행이지만, 최고의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위해서 희생하는 가치들이 너무 시시콜콜하고 
어찌보면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이다.

철저한 상명하복을 필요로 하는 집단과 조직(군대)에서는 이런 철저한 규제가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성을 중심으로 하며, 억압과 통제라는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회사들의 근무체계에 반하는 역주행을 이제서야 포기했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은행업무가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업무들은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행업무들이 철저한 업악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업무들은 아닐 것이다.

당시 이 규제들을 정할때 전세계에서 조롱을 당했다고 하니 과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억압적인 Code를 제시하지 않는 회사가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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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으로 말미암아 발달한 인류의 역사

 

 


인류가 엄지손가락의 해방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발상의 전환 

참으로 놀라운 생각이다.

사실 그렇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서인지 엄지가 없으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도 힘들고 

컴퓨터화면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것도 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형성케 하는 엄지의 힘

어떤 이에게는 엄지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게해 해 준다. 

엄지의 힘~지금 우리는 누구를 위해 엄지를 사용하고 있는가?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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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π(pi)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실로 파이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러하고 우리를 비추는 태양이 그러하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이동수단(자동차)에도 파이의 역사가 들어 있는 것이다.

바퀴가 없었다면 인류는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의 끝없는 학문탐구에 대한 갈구로 끝없는 연구를 함에도 불구하고 

파이의 끝자리는 지금도 셀 수 없을만큼 길다..무리수

어렸을 적 누구나가 들어봤을 법한 파이 혹은 3.14 중, 고등생들은 입시지옥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는

대상중의 하나이기도 하다..하지만 파이는 인류에게 실보다는 득을 더 많이 가져다준 존재이다. 

인공위성과 기상예보에도 π가 쓰인다고 하니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단 소수점 이하 5자리만으로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것이 
π의 힘이다.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π와 함께  인류의 역사가 과학이 더욱 창대하고 무궁한 발전을 할 수 있겠지...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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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변의 무지개


지나간 여름 무렵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중 천변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실제로 살면서 무지개를 볼일이 거의 없으니

무지개를 보고 무척이나 신기함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살면서 쌍무지개를 볼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본다.

쌍무지개가 뜨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나처럼

너도 나도 핸드폰을 들고 카메라를 연일 눌러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나라안의 서울과 수도권은 태풍의 피해로 골머리가 아프지만



 고난뒤에 오는 것은 무지개와 같은 삶


여기 이곳 전주는 태풍은 커녕 햇빛이 쨍쨍하다...

무지개가 정말로 일곱빛깔 형형색색인지 구분은 잘 가지 않지만 그 무지개의 존재함에 아름다움은 느낄수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실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DSLR같은 사진기가 있으면 더 좋은 장면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핸드폰이 무척이나 옛날 모델인지라 

이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 못해 아쉬움이 느껴진다.

자연에서는 비가 거세게 내린뒤 이런 아름다움의 상징인 무지개가 찾아오듯이

누구에게나 고난뒤에 금빛인생이 찾아오는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지개는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 주면서도 '인생'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잠시 생각할 여유도 전해주니 실로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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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80~90년대에 활동하던 가수입니다. 
1996년 자살을 해서 당시 세간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김광석의 자살로 이렇게 한국이 떠들썩할때 저는 6학년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20살 이후로 그의 노래에서 인생을 찾을 수 있기에 가끔 즐겨 듣는데요...

그는 요즘의 대중가요계에서 지금도 찾기 힘든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진정한 가수였다는 생각이 됩니다.

우리시대의 젊음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가수입니다.
'동물원'이라는 그룹에서 활동도 했었고 통기타를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대표적인 노래인 '사랑했지만'과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는 알아도 '김광석'은 잘 모르는 '젊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군복무시절 20살의 한 소대원이 CD 플레이어의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앨범은 김광석의 CD였고 저는 소대원의 씨디플레이어를 빌려 조용히 앉아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에는 차분함과 그리고 조금은 우울함이 느껴졌지만 

진정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인생이란 키워드였던것 같습니다.

여백의 가수 김광석..... 그의 노래를 들으면 시적인 가사와 인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소설가의 평처럼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형편없는 아이돌이 판치는 대중가요계에서 

김광석과 같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수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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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영화관에 앉아서 나 홀로 영화를 본다는 것..

현대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속에서 이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여 세상이 멈춰버린듯한...

가끔은 이리도 ‘멈춤‘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것은 비록 수 많은 군중속에 갇혀버린 ‘고립‘같지만

영화가 시작하기전 그 찰나의 ‘고립‘속에는 결국은 나의 존재가 무한함을 느끼며

‘고립‘이 아닌 ’고독‘만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고독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어딘가에서 나 홀로 왔다가 또 다시 어딘가로 나 홀로 가게 되는 것...

'고독'이란 것이.. 이리도 어려울 줄이야..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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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고민고민을 하다가 급여통장을 한번 바꿔볼까 하고 찾아보니

SC 스탠다드 차타드(SC 제일은행) 내지갑 통장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바꿔볼까 하고 은행을 찾아갔다.  SC 은행의 두드림 통장과 많이 비교되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드림 통장으최근 금리가 많이 떨어져서 내지갑 통장을 한번 이용해보기로 했다.

만드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대체 누가~! 대포통장을 만들고 다녀서 이렇게 통장 만들고 체크카드 만드는데 불편하게 하는지 말이다.

요즘에는 통장을 만들기를 하려면 등본이나 재직증명서등을 요구한다. 그리고 최근 30일 사이에 다른 곳에서 통장을 만든 이력이 있으면 안 만들어준다고 한다. 옛날과 다르게 통장을 만드려면 조건이 까다롭고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내지갑 통장은 보이는 바와 같이 금리가 시중통장보다 굉장히 높다. 단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금액 구간이 정해져 있다. 최초 50만원은 0.1 % 금리, 50~200만원 이하 즉 150만원은 2.8%(3.5)의 금리 그리고 그 2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추가로 0.5(1.5)%의 금리를 제공한다.

 

 

 

단 이 최상의 금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조건 1과 조건 2가 충족되어야 한다.

 

조건 1은 매월 건당 70만원 이상의 입금거래가 있는 경우나 급여이체로 입금되는 경우이다. 1의 조건은 충족하기 쉬우니 패스~

조건 2는

1. 공과금 자동이체 실적이 3건 이상이거나(통신, 전기, 가스 요금 등의 공과금 자동이체)

2. SC 은행 내지갑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 신용카드가 30만원 이상 결제되거나  

3. SC 은행 내지갑 통장 계좌로 적금이나 적립식 펀드를 자동이체 해놓으면 된다.

 그리고 통장을 개설하면 모든 텔레뱅킹, 인터넷 뱅킹과 출금 수수료가 무료이다. 이 점이 또 내지갑통장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사실 나도 2016년에는 소비습관을 조금 바꿔보려고 통장도 한번 바꾸고 체크카드도 만들었다. 연말정산 공제 관련 신용카드는 15% 체크카드는 30%

원래는 체크카드를 주로 썼었는데 신용카드 보다는 체크카드가 조금 더 아끼는 느낌이 들어 다시 체크카드를 많이 사용하려고 한다. 기존에 쓰던 체크카드는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서 그런지 아무리 많이 써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

그래서 리워드 360 체크카드를 만들게 되었다. 2016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2015년 나의 소비패턴이 거의 병원 아니면 식당을 주로 많이 이용해서 2016년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다.

보는 바와 같이 이 카드는 병원,식당,학원, 온라인에서 포인트 적립율이 5%이고 기타 구매시 0.2%인데 식당이나 온라인 병원, 학원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카드는 사용하기에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0만원 최대 1만원 60만원 최대 2만원 적립율을 가지고 있으니 달마다 쏠쏠히 적립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현대카드 X2를 쓰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포인트가 적립되기는 하나 포인트 적립율이 고작 0.5%라서 굉장히 많은 금액을 썼는데도 포인트 적립율이 굉장히 작다. 100만원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적립율이 1%로 바뀐다. 그래서 이것으로  한 번 바꿔보고 2016년의 소비패턴을 정리해봐야겠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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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하던중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GOP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GOP에 투입된 후 처음으로 낙뢰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급부대에서는 GOP밀조(밀어내기 근무)를 그만두고 간부 조편성하에 순찰만 하라는 지시가 지내려왔습니다. 

저는 마침 순찰시간이라 상관이 없었지만 소대장은 취침시간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기간이 꽤나 길 수 밖에 없는 GOP의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5월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방은 고지대라 그런지 이상하게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고 특히나 낙뢰가 많이 칩니다. 저는 지시를 받고 다시 막사로 올라왔고 소대장은 막 잠에서 일어난 듯한 얼굴로 순찰을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응했고 우리둘은 실탄을 한발씩 장전을 하고 다시 철책에 투입되었습니다. 철책에 투입된 후 분진점에서 저와 소대장은 갈라졌습니다. 

저는 맨처음에 좌측으로 그리고 소대장은 우측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좌측끝과 우측 끝에 가서 막사로 연락을 해 본 뒤 다시 이상이 없음을 알고 다시 통신선을 빼 내고 가운데로 모였습니다. 가운데인 분진점에서 다시 둘은 우측으로 이동했습니다. 

우측 끝에는 대기초소라고 해서 근무와 순찰을 돌다가 잠시 쉬면서 경계를 할 수 있는 초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 대기초소에서는 소대원들이 길게 머무르지 않는 일종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머무르더라도 잠시 잠깐 앉아서 눈을 붙이는 새우잠도 자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초소가 61번 초소였는데 지금부터 61번초소라고 하겠습니다. 

이유인즉슨 61번 초소에서는 엎드려서 새우잠을 자거나 잠깐 졸때마다 소대원들이 모두 가위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저도 나중에 순찰을 돌다가 이 초소에서 머무를 때 새우잠을 조금씩 청하곤 했었는데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가위에 눌린걸 경험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잠을 청할때면 하얀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서너차례 본 뒤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얼굴을 아무리 보려고 노력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겁니다. 항상 얼굴을 보려하기 직전에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위에 또 눌린 것을 경험하고 얼마나 무섭게 생긴 귀신인지 보기 위해 얼굴을 보려고 노력해보니 아주~나중에 보였습니다. 얼굴없는 처녀귀신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그것을 저만 경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비슷한 점이 있었던 겁니다. 가위에 눌리는 것과 머리가 길은 여자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소대장과 저 포함 소대원들은 그래서 이 라면만 먹고 쉬면서 있었지 근무가 끝날때까지 선잠 같은것도 이 61번 초소에서는 자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저와 소대장은 거친 비바람과 낙뢰로 인해 으스스함이 느껴지는 순찰을 마치고 61번 초소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소대장과 저는 간략하게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부소대장인 저는 분진점이 있는 우측방향으로 소대장은 다시 좌측을 천천히 돌고 후방전술도로로 이동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방도로는 전술도로이기 때문에 빛같은것이 전혀 없습니다. 전등도 없고 그래서 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야간 근무간에는 또 전등을 키는 것이 금지가 되어 있고요..

저는 이에 흔쾌히 응했고 다시 좌측으로 이동하여 분진점에 다다랐습니다. 순찰간에 특별한 장비의 파손이나 철책의 손상이 없음을 알고 분진점의 계단을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막사로 이동하고 싶었던 저는 힘들었던 순찰을 뒤로 하고 빨리 막사로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방도로와 분진점이 만나는 곳에서 소대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소대장에 저에게 갑자기 이 말 한마디를 던지는 겁니다. “어? 부소대장? 왜 거기에서 와? 지금 나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계속 걸어 왔잖아?”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제가 어이가 없어서 “무슨소리하는 거야! 나 지금 아까 당신하고 헤어지고 분진점에서부터 계속 올라왔는데......”라는 말과 함께 소대장은 뒤를 주저하듯 돌아보며 다시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소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고 동시에 우리둘은 아무말도 없이 그냥 막사로 뛰었습니다. 후방도로와 막사는 100m가 훨씬 넘는 거리였지만 그때 우리둘은 어느 육상선수보다도 더 빨리 달린 것 같습니다. 막사에 올라와서 전등불빛을 본 후 우리둘은 안심하며 막사에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61번 대기초소에서 저는 좌측 소대장은 우측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고 위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순찰을 마친뒤 소대장이 61번초소가 있느 쪽의 후방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총을 뒤에다 메고 조용히 따라오더랍니다. 

철모를 눌러 썻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고 체격은 저와 비슷하면서 저는 원래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 군인 역시 말을 잘 하지 않더랍니다. 평소 목소리가 작아서 손동작과 몸짓을 동반하여 표현하는 걸 즐기는 저이기에 소대장은 그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저인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소대장은 그 군인에게 “어 부소대장 벌써 와? 순찰 안 돌고 그냥 이 쪽으로 왔구나? 그래 혼자가기 무서우니깐 그냥 같이 가자..”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이에 철모를 눌러쓴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대장의 옆 한발짝 뒤편에서 계속 따라왔다고 합니다. 

소대장이 말을 걸면 계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말을 하지 않아 답답하여 말을 걸면 모기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평소 저도 모기같은 목소리에 말대답하는 것을 잘 하지 않아 여기까지는 비슷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군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총을 어깨 뒤로 총구를 아랫방향으로 향하여 크로스백을 메는 것처럼 메는 방법이었습니다. GOP에서 근무를 서는 군인들은 대게 총을 위로한 우로 어깨걸어총을 하는데 그 철모를 눌러쓴 군인은 제가 총을 메는 방식대로 총을 메었기에 소대장은 그 군인이 저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알고 보니 소대장이 그날 오후의 일과시간에 작업간에 낫에 손을 베여 피를 정말 물 흐르듯 철철 흘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군인을 보기 2일쯤 전부터 소대장은 막사에서 잠을 잘 때 가위에 눌리는 꿈과 함께 악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이야기로는 2~3일전부터 컨디션이 상당히 안 좋았고 몸이 상당히 피곤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GOP에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근무 및 막사가 돌아가는 체계를 하루라도 빨리 바로 잡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간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습니다. 

이 사실을 자신의 부모님한테 이야기하니 소대장 어머니께서 “원래 몸이 피곤하고 무척이나 지쳐 있으면 헛것이 보이는 거야”라며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듣고는 어느정도 소대장의 그 날의 상태와 앞뒤 전후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아마 그때 소대장이 무척이나 피곤하여 정말로 헛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소대장과 부소대장의 이 어이없는 사건 얘기를 들은 소대원들은 얼굴없는 귀신이 꿈에 자주 출몰하던 그 61번초소에서 GOP생활이 끝나는 그 날까지 선잠이나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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