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본 기사에서 스위스의 한 은행(UBS AG)이 직원들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은행에 출근하기 위한 Dress Code를 제시하고 규제해서 이슈가 되었다. 그 원래 그 분량이 44쪽에 달하는 분량이었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은행은 그런 대량의 규제들을 벗어나려고 Dress Code를 간소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니 무슨 군대의 병영생활에 나와있는 육군 교범을 보는 듯하다.


육군교범에서 제시하는 내용들
 

군인들의 머리를 어떤식으로 잘라야 하는지

옷(군복 및 체육복 등)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런 것을 관물이라고 한다.)

군장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 

경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위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투화(군화)을 어떻게 매야 하는지(이건 민간인들이 생각하기에 조금 이상할 수도 있겠다.)
등등~~~~~


은행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내용들


No garlic or onions, please -  제발~마늘과 양파는 먹지 말길

Underwear, which should be skin-colored - 속옷은 살색으로

How to apply makeup and what kind of perfume to wear - 어떻게 화장 하고 어떤 향수종류를 선택할지

Keeping your toenails trimmed and filed - 
발톱을 단정하게 다듬고 정리할 것

Always wear wristwatches to signal ``trustworthiness and a serious concern for punctuality

-철저한 시간엄수에 대한 관심과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언제나 시계를 착용할 것 


-영어 원문 출처 : 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ecial/2011/01/182_79884.html

 


군인(부사관)으로서 4년을 넘게 복무를 했지만 그런 규제는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보기가 드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의 정확한 사항들을 볼 수는 업지만 일부 내용을 보다보니 심한규제가 몇 가지가 있다.

마늘과 양파는 먹지 말라는 것 발톱을 단정하게 다듬고 정리할 것, 시계를 언제나 착용할 것 등과 같은 것이다.

향수를 어느것을 쓰든, 발톱을 깍든 말든, 그런것은 쉽게 말해 내 맘이지~!하는 생각이다.

이는  개인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한 것이다.

이 은행에 들어가서 근무를 하려고 했다면 개인기호 사항들까지도 포기하는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가?
차라리 이렇게 규제할 바에는 은행원들에게 군복과 같은 Uniform을 지급하여 

비록 스위스 내에서 최고의 은행이지만, 최고의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위해서 희생하는 가치들이 너무 시시콜콜하고 
어찌보면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이다.

철저한 상명하복을 필요로 하는 집단과 조직(군대)에서는 이런 철저한 규제가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성을 중심으로 하며, 억압과 통제라는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회사들의 근무체계에 반하는 역주행을 이제서야 포기했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은행업무가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업무들은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행업무들이 철저한 업악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업무들은 아닐 것이다.

당시 이 규제들을 정할때 전세계에서 조롱을 당했다고 하니 과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억압적인 Code를 제시하지 않는 회사가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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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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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오적과 관련한 단상..


이제 2015년의 마지막달이 벌써 중반을 지나는 시점이다. 

낡은 2015년은 흘러가는 중이고  새로운 2016년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이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다가오는 2016년의 전망이 썩 밝지는 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5년 한국사회였지만 단연코 돋보이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고 하는 오적이다. 

'오적'은 1970년 김지하가 발표한 판소리로, 70년대초 한국사회의 지배계층을 을사보호조약때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오적에 비유하여 부정부패로 썩어버린 권력층의 모습을 풍자하며 대중들에게 알리는 판소리(시)이다.

아마도 제도권 교육을 나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타는 목마름'이라는 시 제목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고 
김지하는 오적보단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시인일 것이다.

 

                                                      검열을 받고 있는 당시의 모습

김지하는 이 시를 사상계에 발표했고, 사상계는 70년 5월호에 시인 김지하씨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게재하면서 통권 20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고, 

6월 2일 중앙정보부는 ‘오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김지하와 사상계 편집인 김승균.부완혁을 구속했다. 당시는 이것이 반공법위반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만행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다.
 
김지하는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쉬운 한글로 표기한 게 아니라 웬만큼 유식한 인사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도록 옥편을 갖다놓고 같은 음을 찾아 이두식으로 꿰어 맞췄는데, 되도록 개견변(犬)이 들어 있는 한자를 선호했다. 다섯 도둑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같은 짐승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출처 : 다음블로그



 

풀려나는 김지하의 모습

내가 보기에 그때와 지금이 오적에 있어서 다른것이 있다면 한가지가 있는데
그때는 대상이 '일본(
日本)'이겠지만 지금은 대상이 '자본(資本)'으로 앞글자 하나만
바뀌었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행태또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김지하의 '오적'은 
2016년에도 역시나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2016년 대한민국의 오적은 현재 어디에 있을까?..

현재 오적의 재주 뽐내기 장소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자면 요즘에 이슈가 되고 있는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이다. 매해마다 듣는 것 같은
'날치기'소리지만 유독 올해만은 그 액수와 규모가 돋보인다.
 
특히나 이번 예산안 처리과정은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마저도 사설에서 비판을 시도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대통령 임기말 즈음에 '나에게 레임덕은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야당이나 당내 비주류 세력이 임기 중반을 넘어선 정권에 시비를 걸어올까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쪽은 각자 자기 몫 챙기기에 바빠 정권 안위엔 정신줄을 놔버린 주류 세력이 아닌가 싶다
-조선일보-


조선일보에 있어 지금의 주류라 함은 한나라당(새누리당)과 여당 그리고 정부의 핵심인사를 차지하고 있는 정부부처관료들일 것이다. 이런 이들이 이렇게 정신줄을 놔 버렸다는 격한 표현을 하고 있다.

                                                        출처: 노컷뉴스


특히나 예산안의 논란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소위 '형님예산'이라고 하는 이상득의원이다.

예산안처리과정에서 신속하게  처리한 것이 있으니 '포항'관련 예산안이다.
 
혹자는 전체비율로 놓고 따졌을때 이는 아주 작은 %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그 액수와 규모를 따져보면 놀랄만한 수치이다.

예산안처리과정을 놓고 관계되어 있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예산안에 관계되어 있는 이들이 장성 빼고는 모두 오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질적으로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는 국회의원, 그리고 이 처리안의 수혜(?)를 입을 몇몇 장·차관과,  국회의원 , 고급공무원과 재벌(토목기업)이 거기에 있으니 다만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다.

                      
여담이지만, 난 군생활을 적지않게 해온 군인출신이다. 비록 계급과 직급은 낮았지만 소위, 중위 혹은 하사, 
중사 같이 위관장교와 부사관들 못지 않게 낮은 자세로 임하여 군복무를 하는 장성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역시 언행에 있어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는 곧 바른 인성과 직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장성들이 대다수였다. 비록 현대군대에서 창작판소리 '오적'에 나오는 것 같은 행태를 하는 
장성은 못 보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는 장성들이 다수였다는 말이다. 

이번 육군참모총장은 다른 어떤 의혹이나 부정없는 청렴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는 장성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군내에서 진급하기 위한 장성들의 도덕성 문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하고 싶은 말은, 2010년을 살면서 그리고 다가오는 2011년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네크라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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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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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하던중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GOP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GOP에 투입된 후 처음으로 낙뢰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급부대에서는 GOP밀조(밀어내기 근무)를 그만두고 간부 조편성하에 순찰만 하라는 지시가 지내려왔습니다. 

저는 마침 순찰시간이라 상관이 없었지만 소대장은 취침시간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기간이 꽤나 길 수 밖에 없는 GOP의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5월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방은 고지대라 그런지 이상하게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고 특히나 낙뢰가 많이 칩니다. 저는 지시를 받고 다시 막사로 올라왔고 소대장은 막 잠에서 일어난 듯한 얼굴로 순찰을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응했고 우리둘은 실탄을 한발씩 장전을 하고 다시 철책에 투입되었습니다. 철책에 투입된 후 분진점에서 저와 소대장은 갈라졌습니다. 

저는 맨처음에 좌측으로 그리고 소대장은 우측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좌측끝과 우측 끝에 가서 막사로 연락을 해 본 뒤 다시 이상이 없음을 알고 다시 통신선을 빼 내고 가운데로 모였습니다. 가운데인 분진점에서 다시 둘은 우측으로 이동했습니다. 

우측 끝에는 대기초소라고 해서 근무와 순찰을 돌다가 잠시 쉬면서 경계를 할 수 있는 초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 대기초소에서는 소대원들이 길게 머무르지 않는 일종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머무르더라도 잠시 잠깐 앉아서 눈을 붙이는 새우잠도 자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초소가 61번 초소였는데 지금부터 61번초소라고 하겠습니다. 

이유인즉슨 61번 초소에서는 엎드려서 새우잠을 자거나 잠깐 졸때마다 소대원들이 모두 가위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저도 나중에 순찰을 돌다가 이 초소에서 머무를 때 새우잠을 조금씩 청하곤 했었는데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가위에 눌린걸 경험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잠을 청할때면 하얀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서너차례 본 뒤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얼굴을 아무리 보려고 노력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겁니다. 항상 얼굴을 보려하기 직전에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위에 또 눌린 것을 경험하고 얼마나 무섭게 생긴 귀신인지 보기 위해 얼굴을 보려고 노력해보니 아주~나중에 보였습니다. 얼굴없는 처녀귀신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그것을 저만 경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비슷한 점이 있었던 겁니다. 가위에 눌리는 것과 머리가 길은 여자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소대장과 저 포함 소대원들은 그래서 이 라면만 먹고 쉬면서 있었지 근무가 끝날때까지 선잠 같은것도 이 61번 초소에서는 자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저와 소대장은 거친 비바람과 낙뢰로 인해 으스스함이 느껴지는 순찰을 마치고 61번 초소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소대장과 저는 간략하게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부소대장인 저는 분진점이 있는 우측방향으로 소대장은 다시 좌측을 천천히 돌고 후방전술도로로 이동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방도로는 전술도로이기 때문에 빛같은것이 전혀 없습니다. 전등도 없고 그래서 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야간 근무간에는 또 전등을 키는 것이 금지가 되어 있고요..

저는 이에 흔쾌히 응했고 다시 좌측으로 이동하여 분진점에 다다랐습니다. 순찰간에 특별한 장비의 파손이나 철책의 손상이 없음을 알고 분진점의 계단을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막사로 이동하고 싶었던 저는 힘들었던 순찰을 뒤로 하고 빨리 막사로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방도로와 분진점이 만나는 곳에서 소대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소대장에 저에게 갑자기 이 말 한마디를 던지는 겁니다. “어? 부소대장? 왜 거기에서 와? 지금 나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계속 걸어 왔잖아?”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제가 어이가 없어서 “무슨소리하는 거야! 나 지금 아까 당신하고 헤어지고 분진점에서부터 계속 올라왔는데......”라는 말과 함께 소대장은 뒤를 주저하듯 돌아보며 다시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소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고 동시에 우리둘은 아무말도 없이 그냥 막사로 뛰었습니다. 후방도로와 막사는 100m가 훨씬 넘는 거리였지만 그때 우리둘은 어느 육상선수보다도 더 빨리 달린 것 같습니다. 막사에 올라와서 전등불빛을 본 후 우리둘은 안심하며 막사에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61번 대기초소에서 저는 좌측 소대장은 우측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고 위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순찰을 마친뒤 소대장이 61번초소가 있느 쪽의 후방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총을 뒤에다 메고 조용히 따라오더랍니다. 

철모를 눌러 썻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고 체격은 저와 비슷하면서 저는 원래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 군인 역시 말을 잘 하지 않더랍니다. 평소 목소리가 작아서 손동작과 몸짓을 동반하여 표현하는 걸 즐기는 저이기에 소대장은 그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저인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소대장은 그 군인에게 “어 부소대장 벌써 와? 순찰 안 돌고 그냥 이 쪽으로 왔구나? 그래 혼자가기 무서우니깐 그냥 같이 가자..”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이에 철모를 눌러쓴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대장의 옆 한발짝 뒤편에서 계속 따라왔다고 합니다. 

소대장이 말을 걸면 계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말을 하지 않아 답답하여 말을 걸면 모기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평소 저도 모기같은 목소리에 말대답하는 것을 잘 하지 않아 여기까지는 비슷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군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총을 어깨 뒤로 총구를 아랫방향으로 향하여 크로스백을 메는 것처럼 메는 방법이었습니다. GOP에서 근무를 서는 군인들은 대게 총을 위로한 우로 어깨걸어총을 하는데 그 철모를 눌러쓴 군인은 제가 총을 메는 방식대로 총을 메었기에 소대장은 그 군인이 저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알고 보니 소대장이 그날 오후의 일과시간에 작업간에 낫에 손을 베여 피를 정말 물 흐르듯 철철 흘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군인을 보기 2일쯤 전부터 소대장은 막사에서 잠을 잘 때 가위에 눌리는 꿈과 함께 악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이야기로는 2~3일전부터 컨디션이 상당히 안 좋았고 몸이 상당히 피곤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GOP에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근무 및 막사가 돌아가는 체계를 하루라도 빨리 바로 잡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간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습니다. 

이 사실을 자신의 부모님한테 이야기하니 소대장 어머니께서 “원래 몸이 피곤하고 무척이나 지쳐 있으면 헛것이 보이는 거야”라며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듣고는 어느정도 소대장의 그 날의 상태와 앞뒤 전후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아마 그때 소대장이 무척이나 피곤하여 정말로 헛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소대장과 부소대장의 이 어이없는 사건 얘기를 들은 소대원들은 얼굴없는 귀신이 꿈에 자주 출몰하던 그 61번초소에서 GOP생활이 끝나는 그 날까지 선잠이나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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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      나에게 흥미를 끈 것은 영화의 제목이라기보다는 소재였다.
군 부사관 출신인 나로선 해병대라는 소재보단 부사관이란 소재가 맘에 들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사관이란 소재와 함께 여군이라는 소재는 나에게 흥미를 끌었다. 1년에 2기수밖에 되지 않는, 흔치 않는 여군동기들과 같이 임관을 한 나로선 당연히 흥미가 가는 소재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리뷰와 평점을 보니 0점에서부터 10점까지 점수대는 다양했으며 혹평에서부터 악평까지 정말 다양한 반응이었다.

전역한지 1년 8개월정도의 시간이 흘렀다..지금은 군 내무생활의 분위기 및 간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는 못 하지만 영화를 보며 옛 생각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아이의 여군부사관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여군부사관들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그들의 투지와 말투 행동등을 비슷하게 연기한 것 같아 그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엉성한 스토리구성과 어설픈 하극상코미디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임원희가 하사 계급장을 달고 부
대를 전역하는 모습에서 다 해소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군과의 조우중에 부상을 당한 임원희가 전역을 하게

되고 전역을 하면서 다리를 절며 부대 위병소를 걸어나오고 반대편에선 같은 중대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 행렬에게 임원희는 거수경례를 하고 이아이가 제대 지휘자로서 지나치는 듯 하지만 "선두~ 제자리에~서~!"라고

 명령하며 "뒤로~돌아~!"라고 또 다시 명령 그리고 "선배님께 대하여 경례~!!!"라는 명령에 눈물이  났다. 군 시절 거수경례를 칼같이 그리고 거수경례는 진정한 상급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군 시절 원래 소대 이상의 제대에서. 물론 중대이상의 제대에서 단체거수경례를 받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제대에서 단체거수경례를 받는 일은  정말이지 영광적인 이다. 굉장한 공로가 있거나, 상당한 계급이 있거나, 혹은 진정한 상급자로서의 예우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등이 동반되어야만 단체거수경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단체거수경례를 임원희는 위병소를 걸어나오는 길 위에서 받은 것이다.

정말로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것은 인위적인 예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원들의 손끝은 가지런했고 자세는 올바랐으며, 눈빛은 빛났다.

군 부사관 출신으로서 한편으론 임원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명예스런 거수경례를 받고 또 할 수 있다니.....

 영화를 보는 동안 사격장면, 뛸걸음장면, 교육훈련장면 등을 보면서 군시절 내가 지휘하고 가르치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1%를 혹평했지만 난 이 영화를 호평해주는 사람중의 한명인 1%가 되고  싶다.

Posted by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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